솔직히 저는 블랙홀이 영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별을 관찰하고 우주를 공부하면서 블랙홀만큼 매력적인 주제도 없었는데,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보면서 '저게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2023년 2월, 지중해 바닷속 검출기에서 포착된 초고에너지 중성미자 하나가 천문학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어쩌면 블랙홀이 소멸하면서 남긴 마지막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죠.
호킹복사와 블랙홀의 증발 가능성
스티븐 호킹 박사가 제시한 호킹복사(Hawking Radiation)는 블랙홀도 결국 사라질 수 있다는 놀라운 이론입니다. 여기서 호킹복사란 블랙홀이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근처에서 입자를 방출하며 서서히 질량을 잃어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블랙홀도 온도를 가진 흑체처럼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블랙홀은 모든 걸 빨아들이는데 어떻게 뭔가를 내보낼 수 있을까? 호킹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양자역학적 요동으로 입자 쌍이 생성되는데, 하나는 블랙홀 안으로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밖으로 튀어나가면서 블랙홀의 질량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더 흥미로운 건 블랙홀의 질량에 따라 호킹복사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초거대질량 블랙홀처럼 무거운 블랙홀은 사건의 지평선이 워낙 크고 완만해서 시공간의 곡률이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반면 질량이 작은 원시블랙홀(Primordial Black Hole)은 사건의 지평선이 작고 시공간이 극도로 휘어져 있어 호킹복사가 훨씬 빠르게 일어나죠. NASA에 따르면 블랙홀이 소행성만큼 가벼워지면 수십억 년에 걸쳐 눈부신 빛을 방출하며 소멸할 수 있다고 합니다(출처: NASA).
저는 이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관측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여도 실제로 포착하기엔 너무 미약한 신호일 테니까요.
2023년 지중해 중성미자 검출 사건
2023년 2월 13일, 지중해 바닷속에 설치된 KM3넷(KM3NeT) 검출기가 220페타전자볼트(PeV)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를 포착했습니다. 여기서 페타전자볼트란 10의 15승 전자볼트를 의미하는데, 이는 현재 지구상 가장 강력한 입자가속기(LHC)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1만 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KM3넷은 프랑스와 그리스 앞바다 해저에 설치 중인 중성미자 관측소로, 완공되면 1세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저 공간을 검출기로 채우게 됩니다. 중성미자가 물 분자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체렌코프 복사(Cherenkov Radiation)를 수천 개의 광학 센서로 포착하는 방식이죠. 체렌코프 복사란 입자가 매질 속에서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때 발생하는 푸른빛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검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천문학 커뮤니티는 항상 들썩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이 신호가 빅뱅 직후 1초도 안 돼서 생성된 원시블랙홀이 최근 소멸하면서 방출한 입자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내놨거든요. 계산 결과, 만약 정말 블랙홀 때문이라면 산 하나 정도 질량(약 10^11kg)의 원시블랙홀이 지구에서 겨우 12억km 거리, 즉 토성 궤도 근처에서 증발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 저는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빅뱅 직후 태어난 블랙홀이 우연히 태양계 안으로 들어와 최근 소멸했다? 너무나 낮은 확률이라 믿기 어려웠죠.
검증 과정과 남은 미스터리
원시블랙홀이 소멸할 때는 중성미자뿐 아니라 감마선도 함께 방출됩니다. 만약 KM3넷의 신호가 정말 블랙홀 때문이었다면, 소멸 전 최소 7~14시간 동안 수억 개의 감마선이 먼저 검출됐어야 합니다. 천문학자들은 남극 아이스큐브(IceCube) 중성미자 검출기, 티베트의 고고도 우주선 관측소 LHAASO, 멕시코 시에라네그라 화산의 HAWC 망원경 데이터를 교차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어느 관측소에서도 해당 시간대에 추가 신호는 포착되지 않았죠. 유럽우주국(ESA)의 분석에 따르면 만약 원시블랙홀이었다면 LHAASO에서 최소 수억 개, 아이스큐브에서 100개 이상의 입자가 검출됐어야 한다고 합니다(출처: ESA).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결과를 봤을 때 아쉬움보다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뭐 이런 걸 노력할까' 싶었거든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에너지에 비하면 극미한 신호를 찾아 헤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죠. 그런데 이런 과정 자체가 저를 더욱 천문학과 물리학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의문이 생기고, 그걸 풀려는 노력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니까요.
현재 원시블랙홀은 암흑물질(Dark Matter)의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됩니다. 빅뱅 직후 대량으로 생성됐고, 일반 광학 관측으론 찾기 어렵다는 점이 암흑물질의 특성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최근 관측한 초기 우주의 수수께끼 천체 '리틀 레드 닷(Little Red Dot)'도 원시블랙홀과 연결 지으려는 시도가 있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결국 KM3넷의 신호는 원시블랙홀 소멸을 입증하지 못했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이제 인류는 전자기파뿐 아니라 중성미자라는 새로운 눈으로 우주를 관측하는 멀티메신저 천문학(Multi-messenger Astronomy)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엔 관측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중력파도 결국 2015년 LIGO가 포착해냈습니다. 저는 원시블랙홀의 증거도 언젠가 비슷한 방식으로 발견되리라 믿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평생 꿈꿨던 호킹복사의 실제 관측, 그 역사적 순간을 우리 세대가 목격할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블랙홀이 정말 소멸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신호를 남기는지 밝혀낸다면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