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버지를 졸라 망원경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줄줄 외우며 망원경만 있으면 해왕성과 명왕성까지 볼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망원경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죠. 지구에서 일반인이 살 수 있는 망원경으로는 태양계 끝자락의 행성들을 제대로 관측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요. 지금의 해왕성은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 목록에서 제외되면서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 되었지만, 이 행성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존재 자체가 모순인 행성, 니스모델로 풀다
일반적으로 행성은 태양 주변을 도는 가스와 먼지가 뭉쳐서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해왕성의 경우, 제 경험상 천문학 책에서 배운 상식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현대 행성 형성 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련의 천문학자 빅토르 사프로노프가 계산을 해봤더니, 지금 해왕성이 위치한 곳은 태양계 초기에 가스와 먼지의 밀도가 너무 낮았다고 합니다. 그 환경에서 해왕성만큼 거대한 가스 행성이 형성되려면 무려 100억 년이 필요한데, 태양계의 나이는 고작 46억 년입니다. 이는 마치 딸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것과 같은 모순으로, 천문학계에서는 이를 시간척도 문제(timescale problem)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시간척도 문제란 행성이 형성되는 데 필요한 이론적 시간과 실제 태양계의 나이가 맞지 않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 모순을 해결한 건 2005년 과학 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이었습니다. 프랑스 니스에 모인 네 명의 천문학자가 제안한 니스모델(Nice model)에 따르면, 해왕성은 원래 지금보다 훨씬 태양에 가까운 토성 근처에서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니스모델이란 행성들이 초기 위치에서 중력 상호작용으로 인해 궤도를 크게 바꿨다는 태양계 형성 이론을 뜻합니다. 가스와 먼지가 풍부한 환경 덕분에 해왕성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목성과 토성의 중력 싸움에 휘말려 우주 바깥쪽으로 튕겨났다는 겁니다(출처: NASA).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행성이 태어난 자리에서 평생 머무는 게 아니라, 마치 당구공처럼 튕겨 다닐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했거든요.
니스모델은 현재 해왕성 형성에 대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 행성들의 초기 궤도가 현재와 크게 달랐다
- 목성과 토성의 공명 현象으로 궤도 불안정이 발생했다
- 해왕성과 천왕성은 중력 섭동으로 외곽으로 이동했다
초이온얼음과 다이아몬드 비의 세계
1989년 보이저 2호가 해왕성을 근접 촬영했을 때 과학자들이 경악한 이유는 행성 표면의 대흑점(Great Dark Spot) 때문이었습니다. 지구가 통째로 들어갈 만큼 거대한 이 검은 점 주변에서는 시속 2,100km의 초음속 바람이 불고 있었죠. 제가 2003년 태풍 매미를 직접 경험했을 때 시속 195km의 바람에도 간판이 뜯겨 나가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걸 봤는데, 해왕성의 바람은 그보다 10배 이상 강력합니다. 인간이 그곳에 있다면 바람에 날아가는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날 겁니다.
더 기이한 건 대흑점이 사라졌다가 다른 위치에서 다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1994년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재관측했을 때 대흑점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북반구 쪽에서 새로운 흑점이 발견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목성의 대적점처럼 거대한 폭풍은 수백 년간 지속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해왕성은 이 규칙을 완전히 벗어난 케이스입니다.
해왕성에서 이런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초이온얼음(superionic ice)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초이온얼음이란 수천 도의 고온 고압 환경에서 산소 원자는 고체처럼 고정돼 있고 수소 이온은 액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특이한 물질 상태를 의미합니다. 해왕성 내부 깊은 곳에는 이 초이온얼음층이 존재하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엄청난 열이 표면까지 전달돼 상층부 온도 영하 214도라는 혹한 환경에서도 거대한 바람을 일으킵니다. 실제로 해왕성은 태양에서 받는 열보다 2.6배나 많은 에너지를 스스로 방출하고 있습니다(출처: 유럽우주국).
더 놀라운 건 해왕성 내부에서 다이아몬드 비가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초고온·초고압 환경에서 메탄 같은 탄소 화합물이 분해되고, 이 탄소가 뭉쳐 다이아몬드 결정이 형성됩니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이 극한 환경을 재현했더니 실제로 나노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 게 관측됐죠. 제 생각에는 해왕성 중심부에 다이아몬드 산이 쌓여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왕성의 위성 트리톤(Triton)도 특이합니다. 트리톤은 해왕성의 자전 방향과 반대로 공전하는 역행 위성으로, 원래 카이퍼벨트를 떠돌던 천체가 해왕성의 중력에 붙잡혀 강제로 위성이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표면 온도 영하 235도의 얼음 세계임에도 질소 간헐천이 8km 높이까지 분출하고 있으며, 공전 궤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수십억 년 후에는 해왕성의 로슈 한계(Roche limit) 안으로 들어가 산산조각 나 토성보다 거대한 고리를 만들 것으로 예측됩니다. 여기서 로슈 한계란 위성이 행성의 조석력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하는 거리를 뜻합니다.
해왕성은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제외된 이후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 되었습니다. 비용 문제로 인해 1989년 보이저 2호 이후 단 한 번도 탐사선이 방문하지 못했지만, 해왕성의 독특한 특성들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탐사 기술이 발전해 해왕성을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초이온얼음의 실체와 다이아몬드 비의 메커니즘, 트리톤의 기원 같은 수수께끼들이 하나씩 풀릴 거라 기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망원경으로 보지 못했던 그 먼 행성을, 우리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 다시 한번 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